다시 마음을 다져 먹고

“회복” (3) – 마태복음 12:9-21
01/31/2021
특별찬양
02/05/2021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에 저하고 아주 친한 누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참 귀엽고 예쁘게 생기셨는데, 키가 작고, 얼굴에 유독 여드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제하는 남자가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다 시집을 가서 아기들까지 낳았는데, 이 누님만 딱하게도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누님의 초라한 현실을 방증(傍證)이라도 하듯이, 누님에게 별명이 하나 있었는데, ‘묵은닭’이었습니다. 아마도 시집을 가지 않고 끝까지 싱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인 것 같았습니다.

항상 얼굴이 어둡고 우울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님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훤칠한 키에 꽃미남 얼굴을 가진 백마 탄 왕자였습니다. 게다가, 대기업에 다니고, 성품도 좋고, 신앙도 훌륭해서 흠잡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렇게 멋진 청년이 뭐가 아쉬워서!” 당시 교회 어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금방 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두 사람은 보란 듯이 결혼까지 골인했습니다. 결혼식 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누님의 모습이 예쁜 공주 같았습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누님은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입이 귀에 걸려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깔깔깔” 소리 내어 웃는 모습도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참 매력적이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까, 주변 사람들이 그 누님을 ‘새댁’이나 ‘새색시’라고 불렀습니다. 얼마 전까지 그녀를 ‘골칫덩어리’라고 말하던 어른들이 이제는 마치 처음 보는 새 사람을 대하듯이 조심스러워했습니다. 분명히 이전과 같은 사람이고, 뒤늦게 결혼했으니, ‘묵은 댁’ 또는 ‘헌댁’이라고 불러야 맞는 것 같은데, 항상 ‘새댁’이라고 불렀습니다.

교회 권사님 한 분에게 제가 짓궂은 질문을 했습니다. “권사님은 왜 저 누나를 ‘새댁’이라고 부르세요? 전에는 ‘묵은닭’이라고 부르셨잖아요?” 그러자, 권사님이 지긋이 저를 쳐다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결혼해서 딴 남자의 아내가 되었잖아! 그러니까 새댁이지!” 이유가 너무 간단했습니다. 결혼을 통해서 그 누님의 존재가 다른 남자의 아내로 바뀐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의 안주인이 된 것입니다. 홀로 지내던 예전의 모습을 털어내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을 통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의 종살이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되었기에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옛 구습을 좇는 어리석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특히, 2021년도 새해가 되면서부터 우리는 많은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했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 때문에 지난 한 해를 고스란히 잃어버리면서 이번 새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한 달이 후딱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흐트러졌던 우리의 삶을 되잡을 때입니다. ‘성공하는 인생’을 살고 싶으면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인생 삼적(三敵)’이 있다고 합니다. 쉽게 결정하지 못해서 ‘허우적’, 결정하고도 시작하지 못해서 ‘뭉그적’, 그리고, 시작한 후에도 자꾸 뒤돌아보느라고 ‘흐느적’… 마음을 다져 먹고 다시 2월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