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끝까지 책임지신 예수님” – 마가복음 16:1-7
04/04/2021
2021.4.11 주일주보
04/10/2021

이제 4월입니다. 봄입니다.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가다듬을 때입니다. 예전에 경험했던 작은 이야기 한 도막입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빨간색 신호등에 잡혔습니다. 배가 고파서 그랬을까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여기저기 분주하게 두리번거렸습니다. 한 삼십 미터 전방쯤에 있는 전깃줄에 참새들이 새까맣게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참 신비로웠습니다. 우선은 전깃줄이 늘어질 정도로 새들이 많이 앉아 있는데 한 놈도 감전이 되지 않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저렇게 많은 새들이 앉아 있다 보면 반드시 한 마리 정도는 실수하게 마련인데, 실수하는 친구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들만 신고 있는 특별한 고무장화가 있나 봅니다.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한두 놈은 자기 궁둥이를 남의 얼굴에 대고 돌아앉아 있을 법도 한데 심술궂은 참새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까부는 것들은 이미 다 포수의 총에 맞아 죽었나 봅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이 있었습니다. 앉아 있는 새들의 간격이 모두 균일했습니다. 참새들은 수학에 천재들인가 봅니다. 시키지 않아도 소인수 분해를 아주 잘해서 자기에게 할당된 영역을 넘지 않았습니다. 어떤 참새도 자기 한 몸 좀 더 편해 보겠다고 가슴을 부풀려 다른 친구들을 어깨로 밀어붙인다든지, 공간을 더 확보하려고 옆으로 다리를 뻗고 앉아 있는 새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참새들은 욕심이 없나 보다”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틈새도 보이지 않는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다른 참새들 사이에 끼어 앉았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새들이 아무 군말 없이 서로 밀착해서 자리 하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치 전자동 기계처럼,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옆으로 조금씩 움직여 주었습니다. “야! 너 들어 올 자리가 어디 있어? 저리로 안 가!” 핀잔을 주는 새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결국 전깃줄 맨 끝에 앉아 있던 새들이 저절로 떠밀려서 자리를 내어주었는데도, “세상 더럽다”라고 불만을 표시하는 새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기들도 다른 전깃줄로 가서 틈새를 비집고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참새들은 그렇게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가 차선을 바꾸려고 깜빡이 등만 켜도 끼워주지 않으려고 속력을 높여 앞차에 바짝 붙습니다. 앞차가 조금만 늦게 가도 참지 못하고 계속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댑니다. 어떤 때는 전속력으로 차를 몰아 위험하게 앞차를 제쳐버리기도 합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들어 자신의 손가락이 길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욕설을 퍼붓고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런데 참새들은 양보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몸에 배어 있습니다. 도대체 이 새들은 이런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어디에서 배운 것일까요? 공자나 맹자 같은 참새가 있어서 사서삼경을 가르친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신기함과 놀라움에 사로잡혀 참새들에 몰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귓 고막이 찢어질 듯한 경적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습니다. 참새들을 바라보다가 저도 그만 참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제 뒤에서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던 검은색 트럭이 옆으로 쏜살같이 지나치면서 오른 손가락을 높이 추켜세웠습니다. 굵은 바리톤 음색의 욕이 귓가에 메아리쳤습니다. “Asshole!” 미안하다고 손짓을 했지만, 괘념치 않고 미친 듯이 가속 페달을 밟으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공휴일 아침이라 한산했는데도, 그의 마음은 복잡했나 봅니다. 분노를 표출할 때는 국적, 인종 그리고 문화가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사람이 하찮은 미물이라고 낮게 평가되는 참새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일용할 먹거리와 재물 문제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근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참새들을 보아라. 저들은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두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귀하게 여기시겠느냐?” (마태 6:26) 참새의 여유와 넉넉한 마음은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새들도 서로를 관용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다는 만물의 영장 사람은 사뭇 옹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항상 쟁취해야 하고, 지켜야 하고, 남에게 틈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세상은 항상 다툼과 분쟁의 연속입니다.

얼마 가지 않아 제 뒤에서 저를 제치고 사라졌던 검은색 트럭이 숨어 있던 교통경찰에게 발각되어 속도위반 고지서를 받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육중한 거구의 백인 청년이었습니다. 겉모습은 참새보다 백 배 이상 큰데, 살아가는 속 모습은 참새보다 백배 이상 작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 현상 때문에 피곤하고 걱정스러운 일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들의 등장으로 인해서 “행여 평생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닐지?”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마음의 걱정을 좀처럼 내려놓기가 힘드시다면, 그리고 하루하루 조여 오는 답답한 마음 때문에 생각을 다잡기가 힘드시다면, 눈을 높이 들어 전깃줄에 앉아 유유자적하는 참새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너희들은 참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