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그립습니다

셀교재 6월 4주차
06/19/2021
“역경을 이기는 믿음” – 마태복음 15:21-18
06/20/2021

한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두달 반 만에 처음으로 다시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교회의 최고 명절 중의 하나인 부활절마저 모이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답니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지만, 교회의 중진들과 상의해서 모든 일체의 행사를 생략하고 예배 만 드리기로 했답니다.  성전 안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철저히 지켜 2미터 간격으로 자리를 배정했습니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릴 것을 막기 위해 토요일 아침부터 성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예배 시간표를 정해주고 반드시 그 시간에만 와서 예배를 드릴 것을 부탁했습니다.  전 교인의 수가 400명 정도 되었기 때문에 한 번 예배를 드릴 때 120명이 넘지 않도록 세 번의 예배를 계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다고 합니다.  한 동안 교회를 출석하지 않아서 교회의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다 교회에 왔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배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날 전반적인 예배 분위기가 비장하고 진지했습니다. 우선 제 친구도 예배를 인도하려고 강단에 섰는데, 앉아 있는 교인들을 보는 순간 가슴 속 밑바닥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이 올라와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도 똑같은 감정에 복받쳐 통곡하는 바람에 한 동안 예배를 멈추었다고 합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는 바람에 예배를 한 번 더 드릴 수 밖에 없었는데, 모든 예배 시간마다 큰 은혜와 감동이 충만했습니다.

 

설교를 할 때는 조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얼굴에 구멍이 날 정도로 자기의 말을 집중하는 성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했다고 합니다. 자기 생애에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예배였답니다.  “왜, 예전에는 그렇게 예배를 못드렸을까요?”  그 친구는 저에게 주일 날 있었던 예배의 광경을 낱낱이 전하면서 계속 울먹였습니다.

제가 멋쩍어서 한 마디 쏘아 붙였습니다. “야, 그만 울어. 너, 늙었어!” 그러자, 이 친구도 지지 않고 반격했습니다.  “야, 내가 단언하건데, 너는 나보다 백 배는 더할 걸.” 저는 큰 소리로 “하하하” 헛웃음으로 그 친구를 자극했지만, 사실은 그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말을 듣는 내내 숨죽여서 울고 있었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나니, 이미 크리넥스 반통을 거의 다 썼습니다.  책상 위에 휴지가 한 가득 쌓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것 만으로도 이미 눈물샘이 터져서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은 반드시 병원에 가서 여성 홀몬을 조절하는 약을 사 먹어야겠다고 다부지게 결심을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매 주일 텅빈 예배당에서 혼자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전에 북적이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너무 평범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생활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귀곡천계”(貴鵠賤鷄)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고니”와 같이 드문 새는 귀하게 여기고 “닭”과 같이 흔한 새는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항상 새롭고 진귀한 것만 동경하고 추구합니다.  그 덕분에 손이 닫을 만큼 가까이에 있거나 원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처럼 쉽게 다가오는 평범한 것들에 대해서는 고마움 보다는 무감각과 불평으로 일관하며 살아왔습니다. 다람쥐 챗바퀴 돌듯하는 작은 이민 생활 공간 속에서 지지고 볶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짜증스러움의 연속입니다.  “저 인간 좀 안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 “언제고 반듯이 이곳을 뜬다”는 황당한 계획을 입버릇처럼 남발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 북적이는 것이 싫어서 교회에 안간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매주 똑같은 점심식사도 짜증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짜증스러운 평범함이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코로나이바러스 때문에 우리의 평범한 삶이 평범하지 않은 삶으로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습니다.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었던 그 평범함이 이제는 누리기 힘든 비범한 것들이 되었습니다.  마트(Mart)에서 장을 보던 일, 커피숍에 앉아서 아는 사람들과 너스레를 떨던 일, 저녁 준비가 귀찮으면 적당한 한인 식당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담소하며 오붓하게 식사를 나누던 일, 일주일에 한번 친근한 동아리끼리 모여 영화관에 가거나 산행을 하던 일, 그리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밤새워 야식을 즐기며 이바구를 풀어놓던 일들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일들이 이제는 사회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되었습니다.  학교도 문을 닫고, 대부분의 공공 시설이 활동을 멈춘지 오래입니다.  교회에서도 모임을 가져서는 않됩니다.  매일 아침 실시간 동영상으로 새벽 예배를 준비하러 교회에 갈 때마다 혹시 경찰에게 붙잡혀서 “어디를 가냐?”고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변명을 해야할지 미리 머리 속으로 모범 답안을 만들어 봅니다. 모든 것이 다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부산할 때는 장례식 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더 많은 장례식이 발생합니다.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 줄 성도들이나 이웃들이라도  많이 있으면 힘이 될텐데, 직계 가족들 외에는 아무도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텅빈 곳에서 장례예배를 드리다 보면, 집례를 하는 저도 그렇고 고인과 함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는 유가족들도 모두 몸과 마음이 텅텅 빕니다. 마음이 한없이 무겁고 아픕니다.  또한, 장례예배 못지 않게 슬픈 시간도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몇몇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전화를 드릴 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낍니다.  행여나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고 골방에서 때 아닌 옥살이를 하고 있는 그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목이 메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를 드릴 때는 “행여나 이 분의 활짝 웃는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까봐” 두려움에 사로 잡히기도 합니다.  “하나님, 제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매일 예전의 일상이 그립습니다.

너무도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