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새가족 클래스
05/04/2020
2020.5.3 주일주보
05/09/2020

‘사람’이라는 말은 ‘살’이라는 단어와 ‘암’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복합명사라고 합니다.  ‘살’은 우리의 육체, 즉 살덩어리(flesh)를 말합니다. 어렸을 때는 보드랍고, 젊을 때는 탱탱한데, 늙으면 쭈글쭈글해져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살입니다.  미국의 한 의료협회에서 사람의 몸을 값으로 환산해 보았다고 합니다.  팔과 다리 그리고 몸 안의 장기들을 하나씩 계산해 보았더니 얼추 3억 원이 됩니다.  요즘 한국에서 황소 한 마리의 가격이 1,000만 원이라고 하니까, 황소 30마리에 해당되는 엄청난 가격입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생각을 가지고 오묘하게 창조하셨기에 우리의 몸값이 그렇게도 비쌉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집에서 아이들이 듣는데 함부로 “돈이 없다”라고 푸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 한 명의 가치가 3억 원입니다.  자녀가 세 명이 있는 분은 적어도 9억 원을 품 안에 품고 계신 분입니다.  결코 적지 않은 부자입니다.  저는 아들이 둘이니까 6억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값이 조금 덜 나간다고 합니다.  이미 전성기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집은 남자들만 계산하면 거의 6억 3,0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살’이 곧 힘입니다.

 

‘암’이라는 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암은 자기하고 똑같은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성을 의미합니다.  소나 닭 그리고 양과 같은 동물을 부를 때는 ‘암컷’이라고 부르고,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어머니’라고 합니다. ‘암’과 연관된 대표적인 단어가 있는데 ‘암죽’입니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는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는데 젖이 나오지 않으면 산에 올라가서 도끼로 참나무를 잘라다가 그것으로 미역국을 걸쭉하게 끓여 주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힘을 내어 아기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또, 어머니가 쌀을 잘 씻어다가 쇠붙이에 닿지 않게 나무 방망이로 찧어서 정성스럽게 죽을 쑤었는데, 여기에 설탕을 넣어 젖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아기에게 주었습니다.  이것도 ‘암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암죽은 ‘어머니의 죽’이란 뜻입니다.  결국 ‘사람’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어머니의 젖과 사랑을 먹고 자란 ‘어머니의 살붙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근본은 ‘어머니’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母性愛)입니다.  살을 주시고, 인생을 출발케 하신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한 개인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귀한 어머니들을 홀대하고 무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머니를 무시하는 것은 나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몇 년 전에 라스베가스의 거리를 배회하던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순찰 중이던 경찰차에 실려 연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노숙자는 아닌데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도시는 모습이 수상했던 것입니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할머니를 도우려고 한국인 통역사가 두 분이나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한국말로 물어봐도 이 할머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운전면허증이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서 안에 있던 많은 분들이 할머니의 거처를 찾기 위해서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나중에 라스베가스의 한인 교회에 계시는 한 목사님이 오셔서 할머니를 달래면서 설득한 끝에 할머니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로스앤젤레스에 사시는 분이었고, 큰아들 가정과 함께 사셨는데, 아들 내외가 봄나들이를 가자고 권해서 가족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왔다가 길을 잃고 거리에 홀로 남겨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부부를 아무리 수소문해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고, 직접 경찰들을 보냈는데도 집 문을 굳게 닫고 연락을 끊은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는 아들 내외에게 현대판 고려장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져서 사업을 접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치매까지 걸리셔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라스베가스 사막에 버린 것입니다.  말로만 듣던 황당한 일이지만, 실제로 제가 목회를 하던 지역의 한인사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그 가엾은 어머니는 아들 내외가 행여 법적인 처벌을 받을까 봐 입을 굳게 다물고 끝까지 한마디도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이 할머니는 로스앤젤레스의 한인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경찰서로 인도된 이후에도 계속 자신이 실수로 길을 잃은 것이지, 아들 부부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고 계속 발뺌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자신의 몸에서 나온 ‘같은 살덩이’라는 것을 잘 아시는데, 왜 그 자식들은 어머니를 다른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예전에도 술망나니 아들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아서 온몸에 멍이 들었는데도, 자신이 넘어져서 그런 것이라고 끝까지 자신을 탓하던 어머니를 본 적이 있습니다.  또, 사기꾼 아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 도망을 쳤는데, 홀로 남은 어머니가 다 자신이 한 짓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식의 문제와 연관이 되면 언제나 바보가 됩니다.  바보도 그냥 바보가 아니라  전혀 사고할 줄 모르는 금치산자(禁治産者)가 됩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본능처럼 가슴에 새겨진 그 몹쓸 사랑 때문에 이 땅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 언제나 바보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사랑에 방점을 더 두는 이유는 자녀를 위한 첫 번째 희생과 사랑의 수여자가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줄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이 아버지들 같지만, 배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머니들입니다.  사라, 리브가, 요게벳, 십브라와 부아, 마리아, 유니스 같은 어머니들의 희생과 헌신이 결국 성경의 방향을 주님께로 이끌어갑니다.  이번 주는 어머니 주일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때문에 어디에서도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행사를 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더더욱 어머니의 사랑을 깊이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우리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곧 나의 몸이며,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